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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ch episode is a scene in the collaborative process toward a completed novel.
배움 앞에서 멈춘 걸음
Synopsis:
마더
(SN26-A00003)
혼사는 빠르게 굴러가고 있었지만,
규의 마음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다.
이유는 분명했다.
학업의 차이였다.
일본집 장남은 대학을 나온 사람이었다.
신문을 읽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했고, 말끝마다 근거가 있었다. 글로 생각을 정리하는 사람, 배운 언어로 세상을 이해하는 사람이었다.
반면 규는
서당을 제대로 다닌 적도 없었고,
국민학교 문턱도 밟지 못했다.
한글을 더듬더듬 읽을 수는 있었지만, 글을 쓴다는 것은 여전히 두려운 일이었다.
규는 평생을 집안일을 하는 딸로 자라왔다.
밥을 짓고, 아이를 업고, 밭을 일구고, 사람의 기분을 읽는 법은 누구보다 빨리 배웠다.
그러나 글 앞에 서면, 늘 자신이 작아졌다.
그 사실이
혼사가 구체화될수록 더 또렷해졌다.
그와 마주 앉아 있을 때,
규는 말이 줄어들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가 아니라,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는 물었다.
“요즘엔 신문을 뭐로 보세요?”
규는 그 질문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았다.
하지만 대답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냥… 사람들이 말해주는 걸 듣습니다.”
그 말이 끝났을 때,
공기 속에 아주 짧은 침묵이 흘렀다.
아무도 그것을 문제 삼지 않았지만,
규는 느꼈다.
이미 차이가 드러났다는 것을.
아이러니하게도,
이 집안에서 배움의 씨앗은 넘칠 만큼 있었다.
아버지는 한학자였다.
유학을 배웠고, 주역을 섭렵한 사람이었다.
글을 읽고, 뜻을 풀고, 세상의 이치를 말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어머니 또한 똑똑한 여인이었다.
숫자에 밝았고, 판단이 빠르며, 사람의 말 뒤를 읽을 줄 알았다.
집안을 굴린 것은 어머니의 머리였다.
그러나 그 배움은
딸에게 내려오지 않았다.
아버지의 글은
아버지의 세계에만 있었고,
어머니의 판단은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만 전해졌다.
규는 글 대신 일을 배웠고,
책 대신 책임을 배웠다.
그래서 규는
배움이 없어서가 아니라,
배움이 필요하다는 말을 들을 기회조차 없었던 사람이었다.
그 사실이
지금에서야
가장 크게 다가오고 있었다.
어느 날 밤,
규는 어머니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어머니…
제가 너무 부족한 건 아닐까요.”
그 말은 혼사를 향한 질문이었고,
자기 자신을 향한 고백이었다.
어머니는 잠시 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뜻밖에도, 화를 내지 않았다.
“배움이 없다고 사람이 모자라는 건 아니다.”
어머니의 말은 단단했다.
“글은 배워도 되지만,
사람 사는 건 글로만 되는 게 아니다.”
그 말은 위로처럼 들렸지만,
규는 그 안에 또 다른 계산이 있다는 것도 느꼈다.
배움은 나중에 채울 수 있지만,
지금 필요한 것은
혼사를 성사시키는 일이었다.
그러나 규는 처음으로
그 계산에 선뜻 고개를 끄덕이지 못했다.
대학을 나온 사람의 아내로,
신문도 제대로 읽지 못하는 자신이
어떤 자리에 서게 될지
상상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차이는
돈보다, 집안보다
훨씬 더 깊은 골처럼 느껴졌다.
그날 이후,
규는 혼사를 망설이기 시작했다.
아무도 반대하지 않았지만,
아무도 재촉하지도 않았다.
일은 잠시 멈춘 듯 보였지만,
실은 규의 마음이 처음으로 제동을 건 순간이었다.
규는 알았다.
이 결혼이 자신을 불행하게 만들지는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자신을 더 작게 만들 가능성은 충분하다는 것을.
스물둘의 규는
처음으로 깨달았다.
집안의 딸로서가 아니라,
아내가 되기 전에,
사람으로서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를
스스로에게 물어보고 있다는 것을.
그 질문은
이제 막 시작되고 있었다.
규의 마음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다.
이유는 분명했다.
학업의 차이였다.
일본집 장남은 대학을 나온 사람이었다.
신문을 읽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했고, 말끝마다 근거가 있었다. 글로 생각을 정리하는 사람, 배운 언어로 세상을 이해하는 사람이었다.
반면 규는
서당을 제대로 다닌 적도 없었고,
국민학교 문턱도 밟지 못했다.
한글을 더듬더듬 읽을 수는 있었지만, 글을 쓴다는 것은 여전히 두려운 일이었다.
규는 평생을 집안일을 하는 딸로 자라왔다.
밥을 짓고, 아이를 업고, 밭을 일구고, 사람의 기분을 읽는 법은 누구보다 빨리 배웠다.
그러나 글 앞에 서면, 늘 자신이 작아졌다.
그 사실이
혼사가 구체화될수록 더 또렷해졌다.
그와 마주 앉아 있을 때,
규는 말이 줄어들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가 아니라,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는 물었다.
“요즘엔 신문을 뭐로 보세요?”
규는 그 질문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았다.
하지만 대답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냥… 사람들이 말해주는 걸 듣습니다.”
그 말이 끝났을 때,
공기 속에 아주 짧은 침묵이 흘렀다.
아무도 그것을 문제 삼지 않았지만,
규는 느꼈다.
이미 차이가 드러났다는 것을.
아이러니하게도,
이 집안에서 배움의 씨앗은 넘칠 만큼 있었다.
아버지는 한학자였다.
유학을 배웠고, 주역을 섭렵한 사람이었다.
글을 읽고, 뜻을 풀고, 세상의 이치를 말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어머니 또한 똑똑한 여인이었다.
숫자에 밝았고, 판단이 빠르며, 사람의 말 뒤를 읽을 줄 알았다.
집안을 굴린 것은 어머니의 머리였다.
그러나 그 배움은
딸에게 내려오지 않았다.
아버지의 글은
아버지의 세계에만 있었고,
어머니의 판단은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만 전해졌다.
규는 글 대신 일을 배웠고,
책 대신 책임을 배웠다.
그래서 규는
배움이 없어서가 아니라,
배움이 필요하다는 말을 들을 기회조차 없었던 사람이었다.
그 사실이
지금에서야
가장 크게 다가오고 있었다.
어느 날 밤,
규는 어머니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어머니…
제가 너무 부족한 건 아닐까요.”
그 말은 혼사를 향한 질문이었고,
자기 자신을 향한 고백이었다.
어머니는 잠시 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뜻밖에도, 화를 내지 않았다.
“배움이 없다고 사람이 모자라는 건 아니다.”
어머니의 말은 단단했다.
“글은 배워도 되지만,
사람 사는 건 글로만 되는 게 아니다.”
그 말은 위로처럼 들렸지만,
규는 그 안에 또 다른 계산이 있다는 것도 느꼈다.
배움은 나중에 채울 수 있지만,
지금 필요한 것은
혼사를 성사시키는 일이었다.
그러나 규는 처음으로
그 계산에 선뜻 고개를 끄덕이지 못했다.
대학을 나온 사람의 아내로,
신문도 제대로 읽지 못하는 자신이
어떤 자리에 서게 될지
상상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차이는
돈보다, 집안보다
훨씬 더 깊은 골처럼 느껴졌다.
그날 이후,
규는 혼사를 망설이기 시작했다.
아무도 반대하지 않았지만,
아무도 재촉하지도 않았다.
일은 잠시 멈춘 듯 보였지만,
실은 규의 마음이 처음으로 제동을 건 순간이었다.
규는 알았다.
이 결혼이 자신을 불행하게 만들지는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자신을 더 작게 만들 가능성은 충분하다는 것을.
스물둘의 규는
처음으로 깨달았다.
집안의 딸로서가 아니라,
아내가 되기 전에,
사람으로서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를
스스로에게 물어보고 있다는 것을.
그 질문은
이제 막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