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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ch episode is a scene in the collaborative process toward a completed novel.
열여덟, 집은 딸의 손으로 굴러갔다
Synopsis:
마더
(SN26-A00003)
규가 열여덟이 되었을 무렵, 전쟁은 이미 끝난 이야기처럼 불렸다.
사람들은 휴전이라는 말을 입에 올리며 다시 논으로 내려왔고, 무너진 담장을 세우기 시작했다. 그러나 규의 집에서는 전쟁이 끝났다는 말이 특별한 의미를 갖지 못했다. 이 집은 전쟁 전에도 버텼고, 전쟁 중에도 버텼으며, 전쟁이 끝난 뒤에도 그대로 버텨야 하는 집이었기 때문이다.
규의 집은 원래 부잣집이었다.
대대로 내려온 논과 밭이 있었고, 소작을 맡기던 땅도 있었다. 창고에는 곡식이 쌓였고, 외양간에는 늘 소가 끊이지 않았다. 전쟁 중에 털리고 빼앗긴 것이 없지는 않았지만, 뿌리째 흔들리지는 않았다. 이 집의 부는 하루 벌어 하루 사는 돈이 아니라, 시간이 쌓여 만들어진 부였다.
아버지는 장사를 한 적이 없었다.
돈을 벌러 나다닌 적도 없었다.
그는 그저 이 집에서 태어나, 이 집의 땅을 물려받은 사람이었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집에 오래 머무르지 못했다. 전쟁이 끝나자마자, 그는 다시 집을 떠나기 시작했다.
이유는 분명하지 않았다.
누군가를 만나러 간다는 말도 했고, 바람을 쐬러 간다는 말도 했다.
어디로 가는지, 언제 돌아오는지, 정확히 말한 적은 없었다.
그의 방랑은 생계를 위한 것이 아니라, 집 안에 오래 머물지 못하는 성정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아버지가 없어도 집은 굴러갔다.
아니, 오히려 아버지가 없기에 더 정확히 굴러가야 했다.
집에는 규의 언니와 여동생이 있었고, 그해에 여동생 하나가 더 태어났다.
막내는 전쟁이 끝난 뒤 태어난 아이였다. 사람들은 “역시 살림이 되니 아이를 더 낳는다”고 수군댔다. 그 말은 칭찬처럼 들리기도 했고, 시기처럼 들리기도 했다.
아이가 태어나자, 집안의 일은 눈에 띄게 늘어났다.
부잣집이라 해서 손이 덜 가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였다. 관리해야 할 것이 많았고, 결정해야 할 것이 많았다. 소작인들과 나눌 몫, 창고에서 풀어야 할 곡식의 양, 일꾼들에게 줄 품삯, 마을 행사에 내야 할 비용까지, 집안의 무게는 늘 숫자와 판단으로 나타났다.
언니는 바깥일을 더 맡았고,
어린 여동생은 아직 제 몫을 다하지 못했다.
그래서 규는 자연스럽게 안과 밖을 동시에 떠안은 딸이 되었다.
막내를 업고 장부를 넘겼고,
밭일을 하다 말고 마루에 앉아 어른들의 말을 들었다.
열여덟이라는 나이는 아무도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이 집에서 중요한 것은 누가 이 자리를 비울 수 없는가였다.
그 자리는 늘 규였다.
그해 가을, 마을에서 일이 하나 벌어졌다.
공동으로 쓰던 물길을 다시 정비하는 문제였다.
전쟁 중에 무너진 둑을 보수해야 했는데, 비용과 인력이 문제였다.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시선은 규의 집으로 향했다.
“저 집이 제일 많이 내야지.”
“땅도 많고, 여유도 있잖아.”
어른들은 회관에서 회의를 열었고, 규의 집에도 사람이 찾아왔다.
엄마는 막내를 안고 있었고, 규가 대신 마루에 나왔다.
“아버지는 안 계시지?”
“네.”
그 말이 끝나자마자, 어른 하나가 말을 꺼냈다.
“그럼 네가 집안 대표로 얘기해야겠다.”
규는 이미 알고 있었다.
부자 집의 딸은, 아버지가 없을수록 더 빨리 어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물길 공사 비용을 더 내달라”는 요구였다.
규정 이상이었다.
명목은 ‘형편상’이었지만, 실상은 기대였다.
규는 잠시 생각한 뒤 말했다.
“규정대로 내겠습니다.”
그 말에 분위기가 바뀌었다.
“가진 집이 너무 계산적이네.”
“예전엔 이렇지 않았잖아.”
규는 고개를 들었다.
“예전에도 같았습니다. 다만 아버지가 계셨을 뿐입니다.”
그날 이후, 마을에서는 규를 두고 말이 오갔다.
‘부잣집 딸치고는 만만하지 않다’는 말과,
‘아버지 없는 집안에서 딸이 나선다’는 말이 함께 섞였다.
며칠 뒤, 밤중에 규의 집 창고 문이 열렸다.
곡식이 조금 사라졌다.
누가 가져갔는지는 모두 짐작했지만,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다.
“가진 집도 좀 새야 균형이 맞지.”
그 말은 농담처럼 던져졌지만, 규는 정확히 들었다.
부유함이란 보호가 아니라, 늘 시험대에 오르는 자리라는 것을.
그날 밤, 규는 막내 여동생을 업고 창고 앞에 섰다.
곡식은 줄었지만, 집은 여전히 서 있었다.
이 집은 돈으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 자리를 지키는 힘으로 유지되고 있었다.
규는 알았다.
아버지는 이 집의 이름을 물려받은 사람이었고,
자신은 이 집의 시간을 이어가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열여덟의 규는 부잣집 딸이었다.
그러나 그 부는 특권이 아니라,
떠날 수 없게 만드는 무게였다.
그리고 아버지는,
그 무게를 남겨둔 채
오늘도 집 밖 어딘가에 머물고 있었다.
사람들은 휴전이라는 말을 입에 올리며 다시 논으로 내려왔고, 무너진 담장을 세우기 시작했다. 그러나 규의 집에서는 전쟁이 끝났다는 말이 특별한 의미를 갖지 못했다. 이 집은 전쟁 전에도 버텼고, 전쟁 중에도 버텼으며, 전쟁이 끝난 뒤에도 그대로 버텨야 하는 집이었기 때문이다.
규의 집은 원래 부잣집이었다.
대대로 내려온 논과 밭이 있었고, 소작을 맡기던 땅도 있었다. 창고에는 곡식이 쌓였고, 외양간에는 늘 소가 끊이지 않았다. 전쟁 중에 털리고 빼앗긴 것이 없지는 않았지만, 뿌리째 흔들리지는 않았다. 이 집의 부는 하루 벌어 하루 사는 돈이 아니라, 시간이 쌓여 만들어진 부였다.
아버지는 장사를 한 적이 없었다.
돈을 벌러 나다닌 적도 없었다.
그는 그저 이 집에서 태어나, 이 집의 땅을 물려받은 사람이었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집에 오래 머무르지 못했다. 전쟁이 끝나자마자, 그는 다시 집을 떠나기 시작했다.
이유는 분명하지 않았다.
누군가를 만나러 간다는 말도 했고, 바람을 쐬러 간다는 말도 했다.
어디로 가는지, 언제 돌아오는지, 정확히 말한 적은 없었다.
그의 방랑은 생계를 위한 것이 아니라, 집 안에 오래 머물지 못하는 성정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아버지가 없어도 집은 굴러갔다.
아니, 오히려 아버지가 없기에 더 정확히 굴러가야 했다.
집에는 규의 언니와 여동생이 있었고, 그해에 여동생 하나가 더 태어났다.
막내는 전쟁이 끝난 뒤 태어난 아이였다. 사람들은 “역시 살림이 되니 아이를 더 낳는다”고 수군댔다. 그 말은 칭찬처럼 들리기도 했고, 시기처럼 들리기도 했다.
아이가 태어나자, 집안의 일은 눈에 띄게 늘어났다.
부잣집이라 해서 손이 덜 가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였다. 관리해야 할 것이 많았고, 결정해야 할 것이 많았다. 소작인들과 나눌 몫, 창고에서 풀어야 할 곡식의 양, 일꾼들에게 줄 품삯, 마을 행사에 내야 할 비용까지, 집안의 무게는 늘 숫자와 판단으로 나타났다.
언니는 바깥일을 더 맡았고,
어린 여동생은 아직 제 몫을 다하지 못했다.
그래서 규는 자연스럽게 안과 밖을 동시에 떠안은 딸이 되었다.
막내를 업고 장부를 넘겼고,
밭일을 하다 말고 마루에 앉아 어른들의 말을 들었다.
열여덟이라는 나이는 아무도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이 집에서 중요한 것은 누가 이 자리를 비울 수 없는가였다.
그 자리는 늘 규였다.
그해 가을, 마을에서 일이 하나 벌어졌다.
공동으로 쓰던 물길을 다시 정비하는 문제였다.
전쟁 중에 무너진 둑을 보수해야 했는데, 비용과 인력이 문제였다.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시선은 규의 집으로 향했다.
“저 집이 제일 많이 내야지.”
“땅도 많고, 여유도 있잖아.”
어른들은 회관에서 회의를 열었고, 규의 집에도 사람이 찾아왔다.
엄마는 막내를 안고 있었고, 규가 대신 마루에 나왔다.
“아버지는 안 계시지?”
“네.”
그 말이 끝나자마자, 어른 하나가 말을 꺼냈다.
“그럼 네가 집안 대표로 얘기해야겠다.”
규는 이미 알고 있었다.
부자 집의 딸은, 아버지가 없을수록 더 빨리 어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물길 공사 비용을 더 내달라”는 요구였다.
규정 이상이었다.
명목은 ‘형편상’이었지만, 실상은 기대였다.
규는 잠시 생각한 뒤 말했다.
“규정대로 내겠습니다.”
그 말에 분위기가 바뀌었다.
“가진 집이 너무 계산적이네.”
“예전엔 이렇지 않았잖아.”
규는 고개를 들었다.
“예전에도 같았습니다. 다만 아버지가 계셨을 뿐입니다.”
그날 이후, 마을에서는 규를 두고 말이 오갔다.
‘부잣집 딸치고는 만만하지 않다’는 말과,
‘아버지 없는 집안에서 딸이 나선다’는 말이 함께 섞였다.
며칠 뒤, 밤중에 규의 집 창고 문이 열렸다.
곡식이 조금 사라졌다.
누가 가져갔는지는 모두 짐작했지만,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다.
“가진 집도 좀 새야 균형이 맞지.”
그 말은 농담처럼 던져졌지만, 규는 정확히 들었다.
부유함이란 보호가 아니라, 늘 시험대에 오르는 자리라는 것을.
그날 밤, 규는 막내 여동생을 업고 창고 앞에 섰다.
곡식은 줄었지만, 집은 여전히 서 있었다.
이 집은 돈으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 자리를 지키는 힘으로 유지되고 있었다.
규는 알았다.
아버지는 이 집의 이름을 물려받은 사람이었고,
자신은 이 집의 시간을 이어가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열여덟의 규는 부잣집 딸이었다.
그러나 그 부는 특권이 아니라,
떠날 수 없게 만드는 무게였다.
그리고 아버지는,
그 무게를 남겨둔 채
오늘도 집 밖 어딘가에 머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