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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수터산으로 향하던 아이
시놉시스:
마더
(SN26-A00003)
큰아들은 그렇게 명석한 아이는 아니었다. 책을 펴놓고 앉아 있는 모습은 좀처럼 보기 어려웠고, 문제를 빨리 이해하는 쪽도 아니었다. 대신 그 아이는 하루 종일 뛰어놀 힘만큼은 누구보다 넘쳤다. 아침에 눈을 뜨면 밖에 나갈 궁리부터 했고, 해가 질 때쯤에야 흙먼지를 뒤집어쓴 채 집으로 돌아왔다.
동생을 챙기는 일에는 영 소질이 없었다. 집에 동생이 울고 있든 말든, 그의 관심은 오로지 동네 친구들과 형들에게 가 있었다. 조금만 한눈을 팔면 아이는 이미 골목을 빠져나가 있었고,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한참 뒤에야 알 수 있었다. 그 아이의 하루 일과는 늘 비슷했다. 책가방을 내려놓자마자 약수터산으로 향하는 것, 그것이 하루의 중요한 일정이었다.
약수터산은 아이들에게 놀이터이자 비밀기지 같은 곳이었다. 물을 길어 올리는 어른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형들과 함께 나무를 타고 돌을 던지며 시간을 보냈다. 집에 돌아오면 무릎은 늘 까져 있었고, 옷은 성할 날이 없었다. 나는 매일같이 잔소리를 했지만, 아이는 그때마다 대수롭지 않다는 얼굴로 웃기만 했다.
그 시절 국민학교는 아이들로 넘쳐났다. 한 반에 학생이 너무 많아 오전반, 오후반으로 나뉘는 2부제를 해야 할 정도였다. 학교는 그야말로 아이들로 가득 찬 공간이었고, 선생님들 역시 모든 아이의 학업을 세심하게 챙기기에는 벅차 보였다.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눈에 띄었고, 그렇지 않은 아이들은 그 흐름 속에 묻혀갔다.
나는 가끔 학교를 찾았다. 선생님을 만나 아이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였다. 요즘 말로 하면 ‘치맛바람’이라는 것이었을 것이다. 특별히 욕심이 있어서라기보다는, 아들이 남들보다 똘똘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엄마로서 그냥 넘길 수 없었기 때문이다. 혹시라도 조금 더 신경 써주실 수는 없는지, 집에서는 무엇을 도와주면 좋은지,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선생님 앞에 앉아 그런 말을 꺼내는 일이 쉽지는 않았다. 아이가 뒤처진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팠고, 동시에 뭐라도 하지 않으면 더 미안해질 것 같았다. 그 아이는 공부보다는 몸으로 세상을 배우는 아이였고, 나는 그 사실을 알면서도 마음 한켠으로는 남들만큼은 따라가길 바랐다.
약수터산을 오르내리며 하루를 보내던 큰아들은 그렇게 자라고 있었다. 공부에는 둔했지만, 세상과 부딪히는 데는 겁이 없던 아이. 엄마의 치맛바람은, 그 아이를 남보다 앞서게 하려는 욕심이 아니라, 뒤처질까 봐 붙잡고 싶은 마음에서 나온 몸부림이었다. 그 시절 나는 그렇게, 아이의 등을 떠밀기도 하고 붙잡기도 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
동생을 챙기는 일에는 영 소질이 없었다. 집에 동생이 울고 있든 말든, 그의 관심은 오로지 동네 친구들과 형들에게 가 있었다. 조금만 한눈을 팔면 아이는 이미 골목을 빠져나가 있었고,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한참 뒤에야 알 수 있었다. 그 아이의 하루 일과는 늘 비슷했다. 책가방을 내려놓자마자 약수터산으로 향하는 것, 그것이 하루의 중요한 일정이었다.
약수터산은 아이들에게 놀이터이자 비밀기지 같은 곳이었다. 물을 길어 올리는 어른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형들과 함께 나무를 타고 돌을 던지며 시간을 보냈다. 집에 돌아오면 무릎은 늘 까져 있었고, 옷은 성할 날이 없었다. 나는 매일같이 잔소리를 했지만, 아이는 그때마다 대수롭지 않다는 얼굴로 웃기만 했다.
그 시절 국민학교는 아이들로 넘쳐났다. 한 반에 학생이 너무 많아 오전반, 오후반으로 나뉘는 2부제를 해야 할 정도였다. 학교는 그야말로 아이들로 가득 찬 공간이었고, 선생님들 역시 모든 아이의 학업을 세심하게 챙기기에는 벅차 보였다.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눈에 띄었고, 그렇지 않은 아이들은 그 흐름 속에 묻혀갔다.
나는 가끔 학교를 찾았다. 선생님을 만나 아이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였다. 요즘 말로 하면 ‘치맛바람’이라는 것이었을 것이다. 특별히 욕심이 있어서라기보다는, 아들이 남들보다 똘똘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엄마로서 그냥 넘길 수 없었기 때문이다. 혹시라도 조금 더 신경 써주실 수는 없는지, 집에서는 무엇을 도와주면 좋은지,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선생님 앞에 앉아 그런 말을 꺼내는 일이 쉽지는 않았다. 아이가 뒤처진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팠고, 동시에 뭐라도 하지 않으면 더 미안해질 것 같았다. 그 아이는 공부보다는 몸으로 세상을 배우는 아이였고, 나는 그 사실을 알면서도 마음 한켠으로는 남들만큼은 따라가길 바랐다.
약수터산을 오르내리며 하루를 보내던 큰아들은 그렇게 자라고 있었다. 공부에는 둔했지만, 세상과 부딪히는 데는 겁이 없던 아이. 엄마의 치맛바람은, 그 아이를 남보다 앞서게 하려는 욕심이 아니라, 뒤처질까 봐 붙잡고 싶은 마음에서 나온 몸부림이었다. 그 시절 나는 그렇게, 아이의 등을 떠밀기도 하고 붙잡기도 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