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 상세 및 평가
에피소드를 읽고 평가 점수를 남겨 주세요.
각 에피소드는 하나의 장면이자, 완성된 노벨을 향해 나아가는 공동 작업의 조각입니다.
아들이 태어나다
시놉시스:
마더
(SN26-A00003)
이러한 생활이 하루하루 겹쳐 지나가던 끝에,
1964년, 마침내 큰아들이 태어났다.
그날만큼은 규의 친정에서도 깊은 한숨이 먼저 흘러나왔고, 곧이어 참았던 기쁨이 터져 나왔다. 딸만 둘 낳았다는 마음의 짐이, 그제야 비로소 내려앉는 듯했다. 장남의 집안에 장손이 태어났으니, 그것은 한 집의 기쁨을 넘어 집안 전체의 경사였다. 말로는 요란하지 않았지만, 어른들의 얼굴에는 오랜 세월 눌러왔던 걱정이 조금씩 풀려 있었다.
규는 아이를 품에 안고서야 알았다.
그동안 자신이 얼마나 긴장한 채 살아왔는지를. 이 아이 하나로 모든 것이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이, 기쁨과 함께 또 다른 책임으로 다가왔다.
남편은 여전히 공무원 생활을 하고 있었다.
월급은 정해져 있었고, 생활은 늘 빠듯했다. 쌀값과 연탄값은 자주 올랐고, 아이가 하나 늘자 계산은 더 촘촘해졌다. 부족한 돈과 아이들 간식은 때때로 미군부대에서 가져오곤 했다.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통조림, 설탕, 초콜릿, 분유는 그 시절 단칸방 살림에서 귀한 물건이었다. 아이에게 과자를 하나 쥐여 줄 수 있는 날이면, 규는 잠시 세상이 덜 각박해진 듯한 기분을 느꼈다.
1960년대 중반의 서울은 빠르게 변하고 있었다.
시청 앞은 정비 공사가 이어졌고, 광화문 일대에도 개발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허물어지는 건물과 새로 세워지는 구조물들이 뒤섞여, 도시는 늘 어수선했다. 길은 넓어졌고, 사람들은 바빠졌다. 공사장 먼지 속에서 ‘경제 개발’이라는 말이 현실처럼 들리기 시작했다.
라디오에서는 연일 성장과 계획을 이야기했다.
몇 개년 계획이니, 수출이니, 근대화니 하는 말들이 흘러나왔다. 규는 그 말들을 정확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거리의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는 것은 느낄 수 있었다. 사람들은 이전보다 더 분주했고, 가난은 여전했지만 가난을 벗어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곳곳에서 보였다.
그러나 그 변화는 언제나 규의 생활보다 한 발짝 앞에 있었다.
단칸방은 여전히 단칸방이었고, 부엌은 여전히 좁았다. 시골에 맡긴 두 딸의 얼굴이 문득문득 떠올랐고, 그럴 때마다 규는 아이를 안은 팔에 힘을 주었다. 지금 이 아이만은 곁에서 키우고 싶다는 마음이,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1964년 무렵부터 라디오에서는 베트남 이야기가 자주 흘러나왔다.
처음에는 먼 나라의 분쟁처럼 들렸다. 그러나 1965년, 한국이 베트남전에 파병을 결정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전쟁은 다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군복 입은 청년들이 눈에 띄게 늘었고, 누군가는 돈을 벌 기회라 했으며, 누군가는 또 다른 비극의 시작이라 수군거렸다.
규는 전쟁이라는 말에 익숙했다.
이미 한 번의 전쟁을 겪었고, 그 잔해 위에서 지금의 삶을 살아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베트남 전쟁 소식은 그녀에게 남의 일처럼만 느껴지지 않았다. 전쟁은 늘 사람들의 삶을 조용히 바꾸어 놓았고, 그 대가는 언제나 가장 낮은 자리에서 치러졌다.
큰아들을 얻은 기쁨 속에서도, 삶은 여전히 팽팽했다.
아이의 울음은 희망이었고, 동시에 책임이었다. 시청 앞의 도로가 넓어지고, 광화문에 새 건물이 올라가도, 규의 하루는 여전히 밥을 짓고, 기저귀를 빨고, 연탄을 계산하는 일로 채워졌다.
국가는 성장의 길로 들어서고 있었고, 도시는 빠르게 변해갔다.
그러나 규의 삶은 언제나 한 걸음 뒤에서 그 변화를 따라가고 있었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단 하나, 그녀의 품 안에 장손이라는 이름의 아이가 있었고, 그 아이가 그녀를 다시 내일로 밀어주고 있다는 사실뿐이었다.
그렇게 규는 또 하나의 시대를 건너고 있었다.
전쟁의 기억 위에서, 다른 나라의 전쟁 소식을 들으며, 개발이라는 말이 현실이 되어가는 서울 한복판에서—아이를 안고 묵묵히, 그러나 단단하게.
1964년, 마침내 큰아들이 태어났다.
그날만큼은 규의 친정에서도 깊은 한숨이 먼저 흘러나왔고, 곧이어 참았던 기쁨이 터져 나왔다. 딸만 둘 낳았다는 마음의 짐이, 그제야 비로소 내려앉는 듯했다. 장남의 집안에 장손이 태어났으니, 그것은 한 집의 기쁨을 넘어 집안 전체의 경사였다. 말로는 요란하지 않았지만, 어른들의 얼굴에는 오랜 세월 눌러왔던 걱정이 조금씩 풀려 있었다.
규는 아이를 품에 안고서야 알았다.
그동안 자신이 얼마나 긴장한 채 살아왔는지를. 이 아이 하나로 모든 것이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이, 기쁨과 함께 또 다른 책임으로 다가왔다.
남편은 여전히 공무원 생활을 하고 있었다.
월급은 정해져 있었고, 생활은 늘 빠듯했다. 쌀값과 연탄값은 자주 올랐고, 아이가 하나 늘자 계산은 더 촘촘해졌다. 부족한 돈과 아이들 간식은 때때로 미군부대에서 가져오곤 했다.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통조림, 설탕, 초콜릿, 분유는 그 시절 단칸방 살림에서 귀한 물건이었다. 아이에게 과자를 하나 쥐여 줄 수 있는 날이면, 규는 잠시 세상이 덜 각박해진 듯한 기분을 느꼈다.
1960년대 중반의 서울은 빠르게 변하고 있었다.
시청 앞은 정비 공사가 이어졌고, 광화문 일대에도 개발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허물어지는 건물과 새로 세워지는 구조물들이 뒤섞여, 도시는 늘 어수선했다. 길은 넓어졌고, 사람들은 바빠졌다. 공사장 먼지 속에서 ‘경제 개발’이라는 말이 현실처럼 들리기 시작했다.
라디오에서는 연일 성장과 계획을 이야기했다.
몇 개년 계획이니, 수출이니, 근대화니 하는 말들이 흘러나왔다. 규는 그 말들을 정확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거리의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는 것은 느낄 수 있었다. 사람들은 이전보다 더 분주했고, 가난은 여전했지만 가난을 벗어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곳곳에서 보였다.
그러나 그 변화는 언제나 규의 생활보다 한 발짝 앞에 있었다.
단칸방은 여전히 단칸방이었고, 부엌은 여전히 좁았다. 시골에 맡긴 두 딸의 얼굴이 문득문득 떠올랐고, 그럴 때마다 규는 아이를 안은 팔에 힘을 주었다. 지금 이 아이만은 곁에서 키우고 싶다는 마음이,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1964년 무렵부터 라디오에서는 베트남 이야기가 자주 흘러나왔다.
처음에는 먼 나라의 분쟁처럼 들렸다. 그러나 1965년, 한국이 베트남전에 파병을 결정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전쟁은 다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군복 입은 청년들이 눈에 띄게 늘었고, 누군가는 돈을 벌 기회라 했으며, 누군가는 또 다른 비극의 시작이라 수군거렸다.
규는 전쟁이라는 말에 익숙했다.
이미 한 번의 전쟁을 겪었고, 그 잔해 위에서 지금의 삶을 살아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베트남 전쟁 소식은 그녀에게 남의 일처럼만 느껴지지 않았다. 전쟁은 늘 사람들의 삶을 조용히 바꾸어 놓았고, 그 대가는 언제나 가장 낮은 자리에서 치러졌다.
큰아들을 얻은 기쁨 속에서도, 삶은 여전히 팽팽했다.
아이의 울음은 희망이었고, 동시에 책임이었다. 시청 앞의 도로가 넓어지고, 광화문에 새 건물이 올라가도, 규의 하루는 여전히 밥을 짓고, 기저귀를 빨고, 연탄을 계산하는 일로 채워졌다.
국가는 성장의 길로 들어서고 있었고, 도시는 빠르게 변해갔다.
그러나 규의 삶은 언제나 한 걸음 뒤에서 그 변화를 따라가고 있었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단 하나, 그녀의 품 안에 장손이라는 이름의 아이가 있었고, 그 아이가 그녀를 다시 내일로 밀어주고 있다는 사실뿐이었다.
그렇게 규는 또 하나의 시대를 건너고 있었다.
전쟁의 기억 위에서, 다른 나라의 전쟁 소식을 들으며, 개발이라는 말이 현실이 되어가는 서울 한복판에서—아이를 안고 묵묵히, 그러나 단단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