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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둘, 일본집이라는 선택지
시놉시스:
마더
(SN26-A00003)
규는 1935년생이었다.
그리고 스물둘이 되었을 무렵, 더 이상 “아직 어리다”는 말은 통하지 않았다. 그 시절, 여자가 스무 살을 넘긴다는 것은 곧 혼사가 오갈 준비가 되었다는 뜻이었고, 스물둘은 이미 한 박자 늦은 나이에 가까웠다.
집안에 딸만 다섯.
그 사실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무거워졌다.
사람들은 노골적으로 말하지 않았지만, 말의 방향은 늘 같았다.
“이제 큰딸은 갔고…”
“그 다음이 규지?”
“집안이야 말할 것도 없고.”
혼사는 규 개인의 문제가 아니었다.
이 집안의 체면, 자산, 그리고 딸만 다섯이라는 불안을 정리하는 문제였다.
그 무렵부터,
동네에 한 집안의 이름이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그 집을 ‘일본집’이라고 불렀다.
일본집은 말 그대로, 일본에서 피난을 나와 정착한 집안이었다.
해방 직후, 전쟁을 거치며 모든 것을 일본에 두고 나와야 했던 사람들이었다. 집도, 땅도, 재산도 남겨둔 채 빈손으로 돌아온 집.
그 집에는 자식이 열 명이나 있었다.
형제자매가 줄을 지어 앉아 밥을 먹는 집.
사람들은 그 집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자식복은 있다.”
“사람은 많은데, 가진 건 없다.”
일본집은 명백히 가난한 집이었다.
그러나 한 가지, 마을 사람들의 시선을 붙잡는 점이 있었다.
그 집의 장남이었다.
장남은 대학을 나온 사람이었다.
그 시절, 산골 마을에서 대학이라는 말은 거의 전설에 가까웠다. 책을 읽는 사람, 글로 세상을 배운 사람, 머리로 먹고살 수 있을지 모르는 사람.
“일본집 장남이 대학 나왔다더라.”
“공부는 참 잘했다던데.”
“그래도 집안이 너무 약해.”
사람들의 평은 늘 반반으로 갈렸다.
그러나 누군가 이런 말을 꺼내는 순간, 이야기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렀다.
“그럼 규네 집하고 잘 맞지 않나?”
그 말이 나오자,
모든 조각이 맞아떨어지기 시작했다.
규의 집은 부자였다.
비록 산과 밭을 반이나 팔았지만, 여전히 남아 있는 자산은 많았다. 집안은 흔들렸지만, 무너지지는 않았다.
일본집은 가난했지만,
장남은 학력이 있었고,
무엇보다 아들이 있었다.
이 혼사는 자연스럽게
정략결혼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규에게는 재산과 집안이 있었고,
그 집에는 이름을 이을 남자가 있었다.
어머니는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규는 그 침묵이 오래 준비된 것임을 느꼈다.
어머니는 이미 계산을 끝낸 얼굴이었다.
“일본집이라 해도, 사람은 괜찮다더라.”
“아들 있는 집이다.”
그 말 속에는
딸을 걱정하는 마음과,
딸을 집안의 해법으로 쓰려는 결심이 함께 섞여 있었다.
아버지는 그 혼사 이야기에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있을 때도, 없을 때도
결정은 늘 집 밖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규는 그 이름을 들었을 때,
처음으로 자신이 하나의 조건이 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부자집 딸.
딸만 있는 집의 둘째.
스물둘.
일을 잘하고, 말수가 적고, 집을 떠날 수 있는 사람.
그리고 상대는
가난하지만 학력 있는 장남.
자식 많은 집의 기둥.
일본에서 돌아온 집안의 이름.
이 혼사는 사랑과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완전히 낯설지도 않았다.
이 집안에서 살아온 규에게,
삶은 늘 이렇게 필요에 의해 결정되어 왔기 때문이다.
어느 날 밤,
규는 어머니에게 물었다.
“그 집은… 많이 가난하대요?”
어머니는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
“가난은 견디면 된다.”
“하지만 없는 건, 채울 수 있어도
아들이 없는 건, 채울 수 없다.”
그 말은
규의 혼사에 대한 설명이었고,
어머니 자신의 인생에 대한 판결 같기도 했다.
결국 혼사는 오가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드나들었고, 말이 오갔다.
규는 그 대화의 중심에 있었지만,
정작 자신의 목소리는 거의 필요하지 않았다.
이 결혼은
규를 위해서라기보다,
집안과 집안을 잇기 위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스물둘의 규는 알고 있었다.
이 결혼이 자신을 부자로 만들어주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을.
이미 부자였기 때문이다.
대신 이 결혼은
자신을 한 집안의 답으로 만들 것이었다.
그리고 그 답의 대가는,
이제 곧
규 자신의 삶이 될 터였다.
그리고 스물둘이 되었을 무렵, 더 이상 “아직 어리다”는 말은 통하지 않았다. 그 시절, 여자가 스무 살을 넘긴다는 것은 곧 혼사가 오갈 준비가 되었다는 뜻이었고, 스물둘은 이미 한 박자 늦은 나이에 가까웠다.
집안에 딸만 다섯.
그 사실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무거워졌다.
사람들은 노골적으로 말하지 않았지만, 말의 방향은 늘 같았다.
“이제 큰딸은 갔고…”
“그 다음이 규지?”
“집안이야 말할 것도 없고.”
혼사는 규 개인의 문제가 아니었다.
이 집안의 체면, 자산, 그리고 딸만 다섯이라는 불안을 정리하는 문제였다.
그 무렵부터,
동네에 한 집안의 이름이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그 집을 ‘일본집’이라고 불렀다.
일본집은 말 그대로, 일본에서 피난을 나와 정착한 집안이었다.
해방 직후, 전쟁을 거치며 모든 것을 일본에 두고 나와야 했던 사람들이었다. 집도, 땅도, 재산도 남겨둔 채 빈손으로 돌아온 집.
그 집에는 자식이 열 명이나 있었다.
형제자매가 줄을 지어 앉아 밥을 먹는 집.
사람들은 그 집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자식복은 있다.”
“사람은 많은데, 가진 건 없다.”
일본집은 명백히 가난한 집이었다.
그러나 한 가지, 마을 사람들의 시선을 붙잡는 점이 있었다.
그 집의 장남이었다.
장남은 대학을 나온 사람이었다.
그 시절, 산골 마을에서 대학이라는 말은 거의 전설에 가까웠다. 책을 읽는 사람, 글로 세상을 배운 사람, 머리로 먹고살 수 있을지 모르는 사람.
“일본집 장남이 대학 나왔다더라.”
“공부는 참 잘했다던데.”
“그래도 집안이 너무 약해.”
사람들의 평은 늘 반반으로 갈렸다.
그러나 누군가 이런 말을 꺼내는 순간, 이야기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렀다.
“그럼 규네 집하고 잘 맞지 않나?”
그 말이 나오자,
모든 조각이 맞아떨어지기 시작했다.
규의 집은 부자였다.
비록 산과 밭을 반이나 팔았지만, 여전히 남아 있는 자산은 많았다. 집안은 흔들렸지만, 무너지지는 않았다.
일본집은 가난했지만,
장남은 학력이 있었고,
무엇보다 아들이 있었다.
이 혼사는 자연스럽게
정략결혼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규에게는 재산과 집안이 있었고,
그 집에는 이름을 이을 남자가 있었다.
어머니는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규는 그 침묵이 오래 준비된 것임을 느꼈다.
어머니는 이미 계산을 끝낸 얼굴이었다.
“일본집이라 해도, 사람은 괜찮다더라.”
“아들 있는 집이다.”
그 말 속에는
딸을 걱정하는 마음과,
딸을 집안의 해법으로 쓰려는 결심이 함께 섞여 있었다.
아버지는 그 혼사 이야기에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있을 때도, 없을 때도
결정은 늘 집 밖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규는 그 이름을 들었을 때,
처음으로 자신이 하나의 조건이 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부자집 딸.
딸만 있는 집의 둘째.
스물둘.
일을 잘하고, 말수가 적고, 집을 떠날 수 있는 사람.
그리고 상대는
가난하지만 학력 있는 장남.
자식 많은 집의 기둥.
일본에서 돌아온 집안의 이름.
이 혼사는 사랑과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완전히 낯설지도 않았다.
이 집안에서 살아온 규에게,
삶은 늘 이렇게 필요에 의해 결정되어 왔기 때문이다.
어느 날 밤,
규는 어머니에게 물었다.
“그 집은… 많이 가난하대요?”
어머니는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
“가난은 견디면 된다.”
“하지만 없는 건, 채울 수 있어도
아들이 없는 건, 채울 수 없다.”
그 말은
규의 혼사에 대한 설명이었고,
어머니 자신의 인생에 대한 판결 같기도 했다.
결국 혼사는 오가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드나들었고, 말이 오갔다.
규는 그 대화의 중심에 있었지만,
정작 자신의 목소리는 거의 필요하지 않았다.
이 결혼은
규를 위해서라기보다,
집안과 집안을 잇기 위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스물둘의 규는 알고 있었다.
이 결혼이 자신을 부자로 만들어주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을.
이미 부자였기 때문이다.
대신 이 결혼은
자신을 한 집안의 답으로 만들 것이었다.
그리고 그 답의 대가는,
이제 곧
규 자신의 삶이 될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