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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소드 2 ― 사람은 일손이었고, 시간은 흘러갔다
에피소드 번호: SN26-A00003-EP002 작성자: MARSMAN 작성일: 1768449456 현재 평균 평점: 0.00 참여 평가 수: 0
시놉시스: 마더 (SN26-A00003)
셋째 딸 원이가 일을 할 수 있을 만큼 자라 집안일에 합류하면서, 집안의 하루는 겉보기엔 한결 순탄해졌다. 이제 어머니 혼자서 모든 것을 감당하지 않아도 되었고, 첫째 영과 둘째 규, 셋째 원이는 자연스럽게 역할이 나뉘었다. 누가 정해준 것도 아니었지만, 말없이 손이 먼저 움직였고 몸이 먼저 알았다. 아침이면 어머니는 살림과 일의 순서를 짜고, 세 딸은 그 흐름에 맞춰 움직였다. 집안은 마치 잘 맞물린 기계처럼 돌아갔다.

그러나 규의 마음속에는 늘 꺼지지 않는 감정이 하나 있었다.
배우지 못했다는 것.

부모는 공부의 기회를 주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주지 *못했다기보다* 주지 *않았다*. 그 시절, 이 집안에서 사람은 곧 일손이었고, 일손은 곧 자산이었다. 논과 밭이 넓을수록 더 많은 손이 필요했고, 손이 많을수록 집안은 안정되었다.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아이는 집안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여겨졌다. 규는 그 사실을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마음은 따라주지 않았다. 밭에서 허리를 펴고 하늘을 올려다볼 때면, 이유 없이 화가 치밀었고, 어디에도 말하지 못할 아쉬움이 가슴 한켠에 쌓였다.

하지만 그 감정을 오래 붙잡고 있을 여유조차 없었다.
일은 끝이 없었다.

해가 뜨기 전 논으로 나가고, 해가 지면 밭에서 돌아왔다. 물을 대고, 김을 매고, 볏단을 나르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다시 집안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저녁을 먹고 나면 말 한마디 나누기도 전에 잠에 빠져들었다. 초저녁의 잠은 깊었고, 꿈조차 꾸지 않았다. 몸이 먼저 쓰러졌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루가 하루를 밀어내며 흘러갔다.

1945년이 왔다.
해방이라는 말이 어른들 사이에서 오르내렸지만, 규에게 해방은 아무것도 바꾸지 않았다. 일본 국기가 내려가고, 낯선 말 대신 익숙한 말이 들리기 시작했지만, 논은 여전히 논이었고 밭은 여전히 밭이었다. 일은 줄지 않았고, 하루는 여전히 길었다. 1948년, 나라가 새로 생겼다는 소식도 마찬가지였다.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이 생겼지만, 규의 손에 쥔 것은 여전히 호미와 볏단이었다.

그 사이 집안은 더 커졌다.
넷째 여동생이 태어났고, 이어 다섯째 여동생이 태어났다. 아이 울음소리가 늘어날수록 규의 책임도 늘어갔다. 아기들을 업고 일을 해야 하는 날도 많았다. 그리고 마침내, 집안의 막내로 아들 **성규**가 태어났다. 오랜 기다림 끝에 태어난 아들이었고, 집안은 잠시 들뜬 듯 보였다. 아버지의 얼굴에는 오랜만에 환한 기색이 돌았고, 어머니도 말수가 조금 늘었다.

집안은 겉으로는 평온했다.
그러나 그 평온은 오래가지 않았다.

아버지가 변하기 시작한 것은 그 무렵부터였다. 집안에 굳이 돈을 벌 필요가 없던 사람, 늘 마을 근처에서만 지내던 사람이 어느 날부터 전국을 떠돌기 시작했다. 수맥을 본다며, 묘자리를 봐준다며 집을 비우는 날이 잦아졌다. 처음에는 며칠, 다음에는 몇 주, 점점 더 길어졌다. 돌아올 때마다 그는 피곤해 보였고, 말수는 줄어들었다. 어머니는 묻지 않았다. 묻지 않는 대신, 더 많은 일을 떠안았다.

규는 어렴풋이 느꼈다.
무언가가 조금씩 무너지고 있다는 것을.

아버지가 집을 비운 사이, 집안의 자산은 눈에 띄게 줄어들기 시작했다. 곡식이 줄었고, 땅이 하나둘 정리되었다. 어머니는 그 사실을 아이들 앞에서 드러내지 않았지만, 밤늦게 혼자 앉아 있는 시간이 늘어났다. 규는 그 등을 보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이에게는 이미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았고, 어른의 걱정까지 짊어질 자리는 없었다.

그리고 1950년 6월.
모든 것이 멈췄다.

전쟁이 시작되었다는 소식은 갑작스러웠다. 총성과 폭격이 먼 이야기처럼 들리던 시절은 순식간에 끝났다. 마을 전체가 술렁였고, 사람들의 얼굴에서 평온이 사라졌다. 그날 이후, 규의 세계는 다시 한 번 뒤집혔다. 집안의 문제는 더 이상 집안의 문제가 아니었다. 생존 그 자체가 문제였다.

아직 규는 몰랐다.
앞으로 몇 년이, 지금까지 살아온 모든 시간보다 더 길고 더 무거운 시간이 될 것이라는 것을.
그리고 자신이 다시 한 번, 아이가 아닌 **살아남아야 하는 존재**로 불리게 될 것이라는 것을.

그 밤, 규는 잠들지 못했다.
밖에서는 바람 소리와 함께, 설명할 수 없는 불안이 집 안을 천천히 채워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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