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 상세 및 평가

에피소드를 읽고 평가 점수를 남겨 주세요.

각 에피소드는 하나의 장면이자, 완성된 노벨을 향해 나아가는 공동 작업의 조각입니다.

에피소드 1 ― 규, 노동의 이름으로 불리다
에피소드 번호: SN26-A00003-EP001 작성자: MARSMAN 작성일: 1768444336 현재 평균 평점: 5.00 참여 평가 수: 1
시놉시스: 마더 (SN26-A00003)
그 아이의 이름은 "규" 였다.
집안에서는 이름보다 먼저 불렸다. “규야.” 그 부름에는 늘 할 일이 따라붙었다. 첫째 언니 **영**과 규는 그 집안의 가장 확실한 노동력이었다.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빠질 수 있는 일은 없었고, 딸이라는 이유로 제외되는 일도 없었다. 두 아이는 집안의 하루를 움직이는 손과 발이었다.

규의 어머니는 마을에서도 소문난 사람이었다. 머리가 빠르고 판단이 정확했으며, 한 번 정한 일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말수가 많은 편은 아니었으나, 말 한마디에는 군더더기가 없었다. 사람들은 그녀를 두고 “똑 부러진다”고 했고, 그 말에는 존경과 두려움이 함께 섞여 있었다. 집안 살림과 농사일, 사람 쓰는 일까지 모두 그녀의 손에서 정리되었다. 지주 집안의 안주인이었지만, 그녀는 부유함에 기대어 사는 법을 알지 못했다. 오히려 풍족함이 흐트러짐으로 이어질까 경계하는 사람이었다.

아버지는 전혀 다른 결의 사람이었다. 한학을 깊이 공부했고, 주역을 특히 좋아했다. 농사일에 직접 나서는 일은 거의 없었지만, 마을 사람들은 중요한 일이 있을 때면 아버지를 찾았다. 강릉 일대의 수맥과 묘자리를 보는 것이 그의 오랜 취미이자 재능이었고, 그는 그것을 생업으로 삼지 않았다. 집안이 이미 충분한 자산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곡식 창고는 늘 가득 찼고, 논과 밭은 해마다 변함없이 수확을 안겨주었다. 돈을 벌기 위해 서두를 이유가 없는 집안이었다.

일제강점기라는 시대는 훗날 많은 이야기로 덧칠되었지만, 규의 어린 기억 속에서 일본인들은 반드시 잔혹한 존재로만 남아 있지는 않았다. 마을에는 일본인들이 있었고, 그들은 한국인들과 섞여 살았다. 물론 보이지 않는 차별과 권력의 기울기는 존재했지만, 규의 집안에서 곡식을 빼앗기거나 자산을 몰수당하는 일은 없었다. 일본인 관리가 집에 들락거린 적도 있었으나, 그것은 공포라기보다 불편함에 가까웠다. 아이의 눈에는 그들이 그저 낯선 말과 옷을 입은 사람들이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 시대는 무엇보다 **손이 많이 필요한 시대**였다. 기계가 없었다. 논을 갈고, 모를 심고, 벼를 베는 모든 일은 사람의 손으로 이루어졌다. 밭일도 마찬가지였다. 해가 뜨기 전부터 일을 시작해 해가 넘어가서야 끝나는 날들이 반복되었다. 노동은 선택이 아니라 생계였고, 생계는 가족 모두의 몫이었다.

규의 어머니는 이 현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첫째 딸 영, 둘째 규, 그리고 셋째 딸까지 가리지 않고 일을 시켰다. 밭일과 벼농사, 집안일은 자연스럽게 딸들의 몫이 되었다. 아들에 대한 기대는 따로 있었지만, 그 기대가 자라기 전까지 집안을 지탱하는 것은 딸들의 손이었다. 규는 언제나 언니의 등을 보며 일했다. 영이 논두렁을 걸으면 규도 그 뒤를 따랐고, 영이 볏단을 옮기면 규도 같은 무게를 들었다.

어머니는 일을 시키면서도 설명하지 않았다. “왜 해야 하느냐”는 질문은 허락되지 않았다. 해야 할 일이기에 하는 것이었고, 묻지 않아도 되는 것이었다. 규는 그 침묵 속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일의 순서, 계절의 흐름, 어른들의 얼굴빛을 읽는 법, 그리고 말하지 않아도 알아야 하는 것들. 아이는 그렇게 조금씩 어린아이의 시간을 잃어갔다.

해 질 무렵, 온몸에 흙과 땀을 묻힌 채 집으로 돌아오면 아버지는 종종 마루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규는 그 모습을 멀리서 바라보곤 했다. 손은 거칠어지고 발바닥은 굳은살로 단단해졌지만, 책 속 글자들은 여전히 그녀의 세계 밖에 있었다. 그 간극을 규는 말로 표현하지 못했다. 다만 마음 어딘가에, 설명할 수 없는 조용한 감정이 쌓여갔다.

그 시절 규에게 삶은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연속이었다. 기쁨도, 슬픔도 분명하지 않은 채, 그저 하루가 지나면 다음 하루가 오는 식이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하나였다. 규는 이미 어린 나이에 이 집안의 일부가 아니라, 집안을 움직이는 존재가 되어 있었다는 것. 그리고 그 사실은 훗날 그녀의 삶 전체를 관통하는 성격이 되어, 조용히, 그러나 단단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나의 평가 점수 (1~5점)
로그인 후 평가할 수 있습니다.